영화 '밀정'과 브라디보스토크에서 춘원 이광수가 겪은 일
영화 '밀정'과 브라디보스토크에서 춘원 이광수가 겪은 일
  • 이정식 / 언론인
  • 승인 2018.07.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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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블라디보스토크

남을 죽이는 자 <밀정>

2016년 송강호, 공유, 한지민이 출연한 영화 <밀정>이 추석전에 개봉돼 인기리에 상영됐다. 일제시대 무장독립투쟁단체인 의열단의 활동과 일제의 정보원인 밀정으로 인해 독립투사들이 체포되거나 죽음으로 몰리는 비참했던 당시의 상황을 그린 영화다.

밀정은 조직안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으나 조직의 움직임을 몰래 일본 경찰이나 헌병에 알리는 드러나지 않은 배신자를 말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자인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연해주를 거점으로 독립투쟁을 할 때 의형제를 맺었던 엄인섭이란 자가 있었는데 오랫동안 동포들에게 지도급 독립투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후일 밀정임이 드러난 일도 있다.

춘원 이광수(1892~1950)가 밀정으로 몰릴 뻔한 일은 1914년 1월 연해주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다.

그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간 것은 상해의 지도급 독립운동가 신규식(예관, 1879~1922) 선생의 권유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되는 <신한민보>의 주필이 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의 치타까지 갔다가 중도에 포기하긴 했지만, 러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이광수는 상해에서 배를 타고 3일만에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 한인 집단 거류지인 신한촌으로 갔다. 그는 당시 22세의 청년이었다.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와 신한촌의 모습을 이광수는 후일에 쓴 <그의 자서전>(1936)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100년전 블라디보스토크와 신한촌의 모습

“내가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내린 것은 해무가 자욱한 추운 아침이었다. 쇄빙선이 깨뜨려놓은 얼음 바다로 연하여 붕붕 고동을 울리면서 까만 해무 속으로 배가 들어가는 것은 심히 음침하였다.

어디 세상 끝에나 온 것 같았다.

부두에서 썰매를 탔다. 썰매에는 말을 네필이나 달았다. 큰 말, 작은 말. 이름이 신한촌이라길래 어떠한 덴가 했더니 해삼위 시가를 다 지나 나가서 공동묘지도 다 지나가서 바윗돌에 굴 붙듯이 등성이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그것이었다. 이를테면 염라국 지나서다. 해삼위 시에서는 이 귀찮은 거린채들을 공동묘지 저쪽으로 한데 몰아서 격리를 시킨 것이었다. (거린채라는 것은 꼬레이츠라는 아라사 말로 조선 사람이라는 말의 조선 사람 사투리다).

아이들과 청년들이 길바닥에서 얼음을 지치고 있다가 내 썰매가 오는 것을 보고는 욱 모여들었다. 그들은 거의 내 앞길을 막았었다. 그리고는 매우 적개심 있는 눈으로 훑어 보았다.

그중에 한 청년이 쓱 나서며,

“웬 사람이야?”

하고 거의 반말지거리로 물었다. 여기는 모두 함경도의 육진 사투리다.

나는 공손하게 내가 상해에서 온다는 말을 하고 주인 들 집을 구한다는 말을 하였다.

“그 양복은 어디서 지어 입은 것이야?”

“모자가 일본 모잔데.”

“행리(여행가방)도 일본 것이고.”

“분명 조선 사람인가.”

청년들은 내가 들어라 하는 듯이 이런 소리들을 하였다.

춘원 이광수
춘원 이광수

‘밀정’으로 몰려 죽을 뻔한 춘원 이광수

가장 큰 한인 집단 거주지역이었던 신한촌은 당시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서 공동묘지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달동네.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동포신문인 <권업신보>를 내고있던 권업회 회원들이 달려왔다. 김립, 김하구, 윤해 등이었다. 그들은 이광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어 그를 알고 있었지만 밀정이란 의심을 풀 수 는 없었다. 그러나 이광수는 상해의 신규식 선생이 이지역의 거물인 월송 이종호에게 보내는 소개장을 갖고 있어 무사할 수 있었다. 이광수는 권업회원들의 안내로 이종호를 만나며, 여기에서 약 열흘간 머무는 동안 이동녕과 홍범도, 엄인섭, 오주혁, 정재관 등과도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엄인섭이 후일 밀정으로 밝혀진 인물이다.)

만약 소개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에는 밀정 혐의를 받으면 그대로 살해되어 바다에 버려지는 살벌한 시대였다.

영화 <밀정>에서도 의열단원 하나가 밀정으로 드러나자마자 현장에서 다른 단원들에게 곧바로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일제치하, 수많은 밀정들로 인해 동포끼리의 상호 불신은 대단히 심각하였다.

이광수가 블라디보스트크에 오기전 이미 여러 사람이 밀정 혐의를 받아 살해되어 얼어붙은 바다의 얼음구멍에 수장되었다고 이곳 사람들이 말해주었다. 이광수는 자신도 자칫 그런 신세가 될 뻔했다는 섬뜩한 얘기도 들었다.

당시 신한촌에서는 그런 일을 “감자 실은 삯”(밀정을 죽여 달구지에 싣는 값)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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