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장길 칼럼] 김정은의 정치공학
[송장길 칼럼] 김정은의 정치공학
  • 경제저널
  • 승인 2018.06.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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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직 젊은 세대이므로 비핵화에 대한 세계의 요구와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앞날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아직 젊은 세대이므로 비핵화에 대한 세계의 요구와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앞날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984년 1월 8일 생으로 34세의 청년이다. 보통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 사회 메카니즘을 터득하기에 바쁘고, 경험을 한창 쌓아가는 나이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이미 9년 전 약관의 20대 중반에 한 나라의 통치자 자리에 올라 이제는 내부 권력을 움켜 쥐고 있고, 국제무대에서도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다.  다만 그의 정치가 어디로 튈지 분명치 않다는 의심과 불신은 가시지 않고 무겁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재능 있는 지도자”이고 “위대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우지만, 협상을 위한 계산적인 평일 것이다. 그렇게 단순하게 인물평을 내놓는 방식은 그의 사업가적 기지가 번뜩이는 트위터 정치와도 닮았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재능이나 경륜, 업적으로 그 지위에 오른 인물이 아니다. 부친에 의해 지명됐고, 조부로부터 내려온 가문의 후광으로 떠맡은 자리여서 그의 행운이자 멍에다.  김 위원장은 물려받은 권력을 다지는 과정에서 세 가지 통치술을 휘둘렀다. 첫째는 공포 정치로 당과 군의 간부들과 주민들의 충성을 유도했고, 둘째는 간부들의 인사권을 휘둘러 친위세력을 강화했으며, 셋째는 선대들이 굳혀온 당과 군, 인민의 조직을 다잡았다.

그가 갑자기 오른 정상에서 당과 군, 정부를 모두 틀어쥐는 일은 아무리 북한의 특수한 체제 아래에서 선대들의 인맥과 조직을 활용하더라도 젊은 나이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세였던 고모부 장성택과 군 고위층 등을 무자비하게 처형하거나 갈아치운 철권정치는 어찌 보면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창칼이었을 것이다. 일단 체제의 불안요인을 틀어막았지만, 그 과정에서 보인 잔인함은  그에게 각인된 주홍글씨가 되었다.

선대로부터 추진한 핵 개발을 밀고 나가다가 곤경에 처한 김 위원장은 국면을 전환할 절박한 상황에 쫒기고 있었다.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가공할 위협과 제재에 부딪히고, 경제적 곤궁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대로는 생존과 통치가 한꺼번에 위태로워졌다. 핵을 고집하면 무서운 채찍이, 핵을 포기하면 당근이 기다리는 선택의 압박이 옥죄어 오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상대조차도 하지 않는 국제 외톨이었는데, 유독 남쪽의 문재인 정부가 대화의 제스처를 계속 보내고 있어서 그 손을 덥썩 잡았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였다.

한국정부의 중재를 받아든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외교적 방법(diplomatic manners) 대신에  사업적인 협상 방식(business negotiations)으로 속전속결을 택했다. 북한 측의 돌파구 욕구와 미국 측의 선거용 계산이 맞물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극적으로 개최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궁합(chemistry)이 잘 맞는다”고까지 포장한다. 상의 하달(top down) 방식이어서 일괄타결의 기대감도 높았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 김 위원장은 새로운 통치를 염두에 두고 큰 틀에서는 핵을 포기하고, 안전과 경제를 선택한 것으로 여겨졌다. 비핵화를 거듭해서 공언했고, 풍계리 핵실험장도 선제적으로 폭파했다. 김 위원장의 은둔은 막을 내리고, 국제무대 데뷔로 이어지는 듯했다.

김 위원장에게 뜻밖에 영향을 준 변수는 중국이었다. 김 위원장을 한번도 만나주지 않고 냉담했던 시진핑 중국 주석이 돌연 김 위원장을 석 달 안에 세 번이나 초청하는 등 칙사대접을 하면서 상황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그 뒤 북미 간의 협상은 다시 6자 회담처럼 지루해지고 복잡해질 조짐이 보인다. 싱가포르 미북정상회담 후속 고위회담이 미국 측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북한 측 상대가 2주째인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옆자리의 폼페이오 장관에게 “아직도 여기 있느냐”고 뼈 있는 농담을 던졌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을 만난 뒤 달라졌다”면서 “시 주석은 세계 최고의 포커 페이스다”라고 공개적으로 매도까지 했다

북핵 문제에 중국과 러시아가 끼어들면 더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된다. 중국은 미국과 북한이 관계정상화로 가까워지는 동북아 정세 판도를 꺼린다. 미국의 세력이 자신들의 코 앞으로 근접하는 데에 안보상의 알러지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나타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견제가 추측된다. 여기에 중국은 러시아까지 끌어들였다. 아직은 미국의 CVID,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아주 사그러들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약해지는 듯한 현실이 되었다.

김 위원장에게는 언뜻 중국이 대미관계에서 좋은 지렛대로 보이고, 백만 원군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미 그 영향권 안으로 상당히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북핵을 해결해야 북한 경제의 미래가 있고, 핵에 미련을 갖는 만큼 북한의 체제안보와 경제의 획기적인 개선에는 족쇄가 된다는 점을 간과하면 북한은 물론, 한반도 정세를 꼬이게 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면서 이미 을지와 키리졸브 등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면서도 유엔의 대북경제제재의 지속을 강조하고, 행정명령으로 내린 독자적 제재의 시효를 1년 더 연기했다. 북한의 태도를 예의 주시하겠다는 의미다.

북한은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벌인 정치공학으로 엄청난 국가적인 손실을 보았다. 비핵화를 선언하고도 은밀히 핵을 개발했고, 대한 항공기 폭파와 버마 폭발사고, 천안함 격침과 연평도 포격, 박왕자 피살 사건 등을 저질러 놓고도 발뺌하면서 오히려 공세를 폈다. 사건 자체로도 한국과 국제사회의 공분을 샀지만, 그 여파가 쌓여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 그 보이지 않는 신용 상실이 직·간접으로 국운을 갉아먹어서 오늘날 남북의 경제적 격차를 1/21로 위축시킨 요인 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

미국사회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 중의 하나가 거짓말이고, 신용이 한 번 떨어지면 매장되고 만다. 일상적인 인간관계와 거래,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은 거의 치명적이다. 거짓말로 대통령도 하야했고, 대통령 후보도 사라졌다. 미국뿐 아니라 서양문화에서  두드러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북한이 과거에 비핵화의 약속을 깨고 몰래 개발해왔음을 미국과 국제사회가 결코 잊지 않았음을 김 위원장은 새겨야 할 것이다.

김 위원장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거듭 약속했어도 아직도 그 가능성에 강한 의구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래의 핵과 낡은 시설은 파기하더라도 이미 개발한 핵 폭탄과 물질은 깊이 숨길 것’(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 등)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렇다면 그것은 진정한 비핵화가 아니다. 한국에게는 재앙이다. 풍계리 실험장의 폭파도 내부까지 완전히 파기시켰는가에 의심이 그치질 않는다. 시원하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시선이 집중돼 있는 북핵 문제에서 눈가림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만일 다시 그런 정치공학적인 노림수에 유혹을 받는다면 엄청난 분노와 보복을 부를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아직 젊은 세대이므로 세계의 요구와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앞날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과오는 차치하고라도 이제부터라도 투명하게 정도를 걸으면서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일 때 세계는 응분의 반응을 보일 것이며, 2500만 주민들의 삶은  새 출발을 하게 되리라고 본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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